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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25] 그리스도의 마음
고린도전서 2장 11∼16절

아프리카! 이름만 들어도 멀게 느껴졌던 그곳을 일주일의 짧은 일정으로 정신없이 다녀왔습니다. 목적지까지 꼬박 이틀이나 걸리는 먼 곳을 가면서 피곤한 몸보다 뒤숭숭한 맘이 더 힘들었습니다. ‘이 먼 곳을 왜, 무엇 때문에 가는 것일까. 아프리카라는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또 무엇을 느끼게 하시려고 주님은 나를 이 먼 길에 나서게 하신 것일까’ 하는 생각을 품고 아프리카 에스와티니까지 갔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 제 눈에 들어온 모습은 ‘아픔’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한창 엄마 아빠 품에서 어리광이나 부리고 있을 나이인 아홉 살의 러브니스, 열한 살의 시포세토에게선 어린아이다운 천진난만함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러브니스에겐 아픈 엄마와 네 명의 동생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오랫동안 괴롭혀 온 지독한 가난이, 시포세토에겐 부모에게 버림받고 병든 할머니 손에서 사촌들과 함께 살고 있는 참담한 현실이 그들 안에 있어야 할 동심마저 자라나지 못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내내 러브니스와 시포세토의 힘겨움에 붙들려 있는 그 얼굴들이 떠올랐습니다. 똑같은 사람인데, 우리 아이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아이들인데, 왜 그 아이들은 그렇게 힘겨운 삶에 내던져진 것일까. 몸도 피곤했지만 마음은 더 힘들었습니다. 아프리카로 가면서 제게 던졌던 질문,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아프리카로 보내시는 것일까’에 대한 답을 찾으려 고심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과연 우리가 품어야 할 ‘그리스도의 마음’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우리는 흔히 ‘알 만한 것은 다 안다’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는 만큼만 볼 수 있고, 보이는 만큼만 아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니 정직하게 말한다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알고 싶은 것만 알고자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보지 못하면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보고 싶지 않고 알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해선 전혀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 우리를 향해 주님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11∼12절), 하나님의 영으로 세상을 바로 알고(13∼15절),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품으라(16절)는 것이지요.

안 보아도 되는 아프리카를 보고 말았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부담스러운 아프리카를 보게 된 것입니다. 보았고 느꼈고 주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제 안에 작은 샘처럼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껏 마땅히 감사해야 할 많은 일들에 대해 철면피처럼 감사할 줄 몰랐고, 함께 힘들어하고 아파해야 할 모든 일들에 대해서도 무감각과 무책임으로 일관했었음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양심에 가책이 일어났습니다. 죄스럽고 슬펐습니다. 러브니스와 시포세토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와 함께 아프리카를 다녀오지 않은 성도님들에게 이런 말씀은 개인의 감상적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게 아프리카를 보게 하신 것은 저 한 사람만 아프리카를 보고 주님의 마음을 품으라는 뜻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믿음의 눈과 영으로, 아프리카를 함께 보고 아프리카를 향한 주님의 마음을 함께 품으라는 뜻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본문의 외침이 더욱 더 강하게 우리 안에서 메아리가 되어 울리는 것입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 2:16)

손학균 목사(춘천 석사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