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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01] 요나의 믿음
요나 4장 6∼11절

인생에는 폭풍이 몰아칩니다. 중요한 것은 폭풍을 맞이하는 나의 태도입니다. 요나는 하나님께 불순종해서 태풍과 맞닥뜨립니다. 그러기에 요나의 신앙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욘 1:9)라고 고백합니다.

얼마나 귀한 고백입니까. 잘 나갈 때 고백은 쉽지요. 하지만 불행이 닥치고 고난이 다가올 때, 그런데도 하나님은 마땅히 우리의 경배를 받아야 할 분이라고 경배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고난 중에 찬송과 기도, 충성과 봉사는 어렵습니다. 요나는 고난 중에 예배했고 기도했습니다.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욘 1:10)에서는 요나가 내 탓이라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고난 중에는 남을 탓하기가 쉽습니다. 에덴에서 아담은 아내를 탓했고 하와는 환경을 탓하면서 결국 하나님을 탓합니다.

그런데 요나는 내 탓이라고 고백합니다. 얼마나 귀한 고백입니까. 기독교 신앙이 뭡니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를 봅시다. 너와 나 모두 죄인임을 선언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이 진리를 수용할 때 인간이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됩니다.

왜 사람은 끊임없이 다툽니까. ‘너는 나쁘다 나는 옳다’라는 것이지요. 상대방을 정죄하고 나만 옳다할 때 자비와 용서는 없고 오직 미움과 다툼, 시기만이 남습니다. 반면 ‘네가 잘못했지만 사실은 나도 잘못했다’라고 고백할 때 답이 생깁니다. 서로 양보하고 겸손해지면 타협의 길도 열립니다.

요나의 중요한 신앙 고백은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욘 2:4)입니다. 그는 쫓겨났지만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봅니다. 내 잘못으로 벌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면서 하나님이 다시 나를 받아주기를 간구하는 겁니다.

요나는 하나님에 대한 선한 이미지의 소유자였습니다. 인생과 신앙의 성패에 있어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구원을 얻고 천국을 상속받았습니다. 이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최고로 귀한 것입니다. 환경이 불리할지라도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믿음으로 고난을 견딜 때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해주십니다.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욘 2:10)

하나님은 벌레를 예비해 요나에게 그늘을 만들어 괴로움을 면하게 한 박넝쿨을 갉아먹게 합니다. 이로 요나가 불평하자 하나님은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9절)라고 타이릅니다. 우리에게도 진정한 내 소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만사는 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만물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심지어 내 원수까지도 사랑하십니다. 원수조차도 하나님의 작품이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처럼 모든 인류를 내 가족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개인과 가정, 교회, 국가 간 갈등의 근본 원인은 무엇입니까. ‘너는 내 가족이 아니다’라는 구별과 차별에서 비롯됩니다. ‘갑질’이라는 것도 가족이라는 생각이 없기에 생겨나는 일입니다. 오늘날 진보 보수 간 다툼의 해법이 어디 있습니까. 상대방이 보수든 진보이든 간에 한 가족 한 혈통이라는 마음만 있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1948년 여순사건 때 두 아들을 잃은 고 손양원 목사님을 생각합시다. 한 학생이 쏜 총에 두 아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손 목사님은 탄원서를 제출해 그 학생의 목숨을 살렸고 입양해 양육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가족으로 여길 때 용서와 양보, 사랑이 시작됩니다.

김기영 목사(행복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