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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2/13] 내 삶의 멘토 서남동 목사님
내가 신학교에 가겠다고 결심하고 100일 기도를 시작한 것은 서울 현저동 101번지 소재 서울형무소(현 서대문역사박물관) 안에 갇혀 있던 1977년 말이었다. 당시 나는 독재정권에 반대했다는 이유(긴급조치 9호 위반)로 받은 2년의 형기를 거의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감옥 생활은 내게 일종의 선물과도 같았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단비에 흠뻑 취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같은 방 수감자들도 모두 교인으로 만들었고, 출소 후 목회자가 될 꿈을 꾸었다.

그러나 막상 출소 후 상황을 생각하면 암담했다. 다니던 대학에서는 이미 제적됐고, 긴급조치 위반으로 제적된 학생들은 타 대학으로 편입학이나 재입학, 유학조차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신학교들도 같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출감을 앞두고 100일 기도를 시작했고, 새벽마다 하나님께 매달렸다.
“하나님, 제발 저를 신학교에 보내주세요.”

하나님께서는 내가 감옥에서 한 100일 기도에 놀라운 방식으로 응답하셨다. 출소 3일 만에 나는 아주 특별한 신학교가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가 설립한 대학원 과정으로 입학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제적당한 학생들로 제한한다고 했다. 이런! 하나님은 내 기도에 응답하시기 위해 아예 신학교 하나를 세우시기로 한 모양이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교수님들도 안병무 이우정 문익환 김찬국 문동환 선생님 등 역시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해직된 분들이었다.

1978년 3월에 개교하면서 첫 신학생을 모집했다. 나는 당장 달려가서 면접을 봤다. 입술이 도톰하고, 얼굴 윤곽이 뚜렷한 귀공자 스타일의 면접관 한 분이 바로 서남동 목사님이었다. 당시 제적된 학생을 위한 신학교육 과정을 책임지신 분이었다. 물론 서 목사님도 독재정권 타도 운동을 하다가 수년간 옥고를 치르셨다.

나는 면접장에서 서 목사님이 하셨던 두 가지 질문을 평생 잊지 못하고 있다.
“권군은 무엇을 위해 신학을 하려 하는가?”
“권군은 왜 목사가 되려고 하는가?”
이 두 가지 질문이다.

내가 뭐라고 답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까지는 그저 목사가 되고자 했고, 그래서 신학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목사가 된 후, 종종 내 신앙과 행동에 의심이 생길 때마다 목사님이 던지신 그 두 가지 질문에 나를 비춰본다.

나는 서 목사님께서 강의한 조직신학 수업 첫 시간 노트를 지금도 갖고 있다. 첫 장에는 ‘하루 18시간 노동을 하고, 월급 3만3550원을 받는 5인 가족의 가장인 농심라면 임석철씨’ 사건과 그 의미에 대해 기록돼 있다. 서 목사님은 임씨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 세상 약자들에게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가르치셨다.

목사님의 가르침과 결론은 단순했다. 목사와 교회는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한 하나님의 심부름꾼, 즉 ‘한(恨)의 사제’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목사님의 그 열정, 사회의 약자와 소외 이웃들에 대한 열정을 누가 따라갈 수 있을까. 어떤 목사가 될지에 대해 특별한 생각도 없이 그저 신학교에 입학하려 했던 나는 서 목사님 밑에서 비로소 목회자로서의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 줄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늘 기도한다. 특히 올해는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 한국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행사, 북한의 수해피해 모금 등의 굵직한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목사님이 그 어느 해보다도 더 많이 기억났다.

서 목사님의 조교로 있을 때 나는 목사님 손에서 책이 떠나 있었던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책상 위에는 손바닥 두뼘 높이로 책들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방을 치우면서 펼쳐져 있는 책을 보면 여기저기 밑줄이 가득했다.

한번은 목사님께 물었다.
“평생 공부하신 분이 1학년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무슨 책을 그렇게 많이 읽으세요?”
목사님의 대답은 딱 한 마디였다.
“교수가 공부하지 않고 감히 어떻게 교단에 서겠느냐.”
1학년을 가르치면서도 최선을 다하신 서 목사님을 기억할 때마다 나는 ‘내가 과연 목사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하고 반성하게 된다.

서 목사님은 1984년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불과 66세의 안타까운 나이셨다. 벌써 20여년이 지났지만 난 아직도 목사님을 잊을 수 없다. 성실한 가르침과 제자들에 대한 격려와 애정, 고난받는 이웃에 대한 책임감, 무엇보다 이 시대 목사와 교회가 서야 할 자리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주신 분. 올해 우리 제자들은 서 목사님을 위해 소박하게 기념사업회를 만들었다. 목사님의 가르침을 잊지않고 온몸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다. 서남동 목사님, 사랑합니다.

글 권오성(기독교교회협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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