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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2/13] 신부님의 부부병법
결혼식은 나를 죽이는 장례식… ‘부부간 우정’ 저축하세요
대체 신부님에게 어떤 비결이 있었던 걸까?
“결혼은 사계절의 우정을 저축하고 완성해가는 과정이다.” 이 한 마디가 김영택 신부의 지론이다. 서강대 예수회 소속인 김 신부가 보스턴에서 유학하던 1995년 이래 주창해온 일명 ‘사계절 우정론’의 핵심.
“한인 유학생들 고민이 학업과 결혼, 딱 두 가지였어요. 특히 남녀관계에 대해 사제인 저에게 많이 상담해오길래 열심을 갖고 연구했죠. 직접 결혼해 봐야 부부의 갈등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내 부모, 그리고 형제들, 신도들의 결혼생활에 상담자로, 조언자로 참여하면서 터득한 해법이지요.”

김 신부는 “결혼생활을 사계절의 변화에 비유해 이해하면 부부 갈등을 훨씬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테면 ‘봄’은 남녀가 우정의 씨앗을 심어 싹 틔우는 계절, ‘여름’은 서로 치열하게 싸우며 성장해가는 계절이다. ‘가을’은 정열은 사라졌으되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열매를 맺는 계절이고, ‘겨울’은 부부의 신화를 완성한 뒤 모든 것을 비우고 떠날 준비를 하는 시기란다.
결혼생활에서 애정보다 우정이 중요한 이유가 이 때문.
“성적 매력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애정은 한 순간이지만, 믿음을 바탕으로 한 우정은 저축이 되니까요. 우정이 쌓이면 위기도 쉽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일단 출발이 중요하다. “결혼식은 장례식”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김 신부는 “결혼과 동시에 개인인 ‘나’는 죽이고 누구의 남편과 아내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로의 신화를 존중하는 것도 필수.
“사람은 저마다 자신만의 신화와 족보를 갖고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 이유인 부로를 서로 존중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요. 부부의 침대엔 부부와 시부모, 친정부모가 함께 누워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습니까?”
물론 가장 힘든 시기는 ‘여름’이다. 매력은 사라지고 권태와 갖가지 현실의 문제로 다투게 되는 계절. 이럴 땐 “아담과 이브 이래로 모든 부부가 여름을 겪는다고 생각하면 훨씬 덜 억울하다”고 김 신부는 귀띔한다.
“여름이 싫다고 이혼한 뒤 새로운 봄을 찾아간다고 해도 여름은 다시 찾아올 테니까요. 피하지 말고 내가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도전의 장이라고 여겨보십시오.”

여름을 이길 수 있는 비법은 두 가지다.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행복했던 ‘봄’을 추억하기, 모든 걸 버리고 헤어져야 하는 ‘비움의 계절’ 겨울을 상상하기. “사계절 우정을 가톨릭 피정(避靜) 프로그램으로 진행할 때에는 일정 시간 동안 남편 또는 아내가 죽었다고 여기고 혼자서 지내게 합니다. 상상으로 배우자의 장례식을 치르게도 하는데 이 통과의례를 통해 사랑을 되찾은 부부들이 많습니다.”
이게 끝이라면 ‘사계절 우정론’도 다른 특강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느낄 터. 희정씨를 울린 김 신부의 비법은 대중가요를 통한 치유다.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로 강의가 넘어갈 때마다 김 신부는 반드시 대중가요를 한 곡씩 들려줬다.

“현실에 발 딛고 사는 사람들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는 대중가요는 말 그대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림으로써 정신적 치유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하는 김 신부는 강의를 위해 선곡해놓은 대중가요 CD만도 수백 장이다. 당신이 지금 여름의 폭풍우 속에 서 있다면 패티 김의 ‘빛과 그림자’를, 배우자를 떠나 보낸 뒤 겨울의 빈 자리에 서 있다면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들어보시라. “3일이나 갈까 했던 약발이 벌써 한 달째인데, 사랑이 다시 시들해질 때마다 ‘우리는’을 흥얼거리면 그날의 감동이 되살아난다”며 희정씨는 활짝 웃었다. ‘사계절의 우정’ 강의나 피정 프로그램에 대한 문의는 (02)705-8221~2
김윤덕 기자 sion@chosun.com
조선일보 2007.5.23. A23면 인용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