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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2/13] 사랑하기 좋은 나날
앞날이 불안한 이는 졸업이 민망하고 직장을 얻은 이는 새로운 생활이 만만찮다. 세상살이는 이래저래 간단치 않다. 잘난 이는 잘난 대로,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복잡하다.
사랑하는 이는 만나지 못해 괴롭고 미운 이는 만나 괴로운 세상살이. 그래서 당신은 젊은 나이에 벌써, 마음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혼자만의 방에서 강퍅하게 애늙은이가 되어 가고 있지는 않은지.

젊고 열정적일수록 실망할 일이 많고 좌절을 견뎌 내기 힘들지만, 자그마한 좌절이나 사소한 실망으로 돌아앉아 마음 문을 폐쇄하지 않게 되기를! 차라리 부정적인 경험을 감당하지 못하는 내 자신의 두려움을 응시하게 되기를!
모든 고통에는 뜻이 있고 행운은 거저 오는 법이 없으니 불행까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세상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다.

쏟아지는 정보, 상식을 벗어나는 뉴스가 넘쳐 나는 세상은 늘 소란하고 소란스럽지만 잘 나이든 어른이 들려준다.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고, 그러니 마음 문을 열라고, 문득문득 생이 선물하는 은밀한 비밀이 있어 생의 신비에 동참하다 보면 생이 그만큼 풍요로워진다고.

생의 신비는 사랑이다. 젊은 날에는 사람 사랑이고 일 사랑이다. 어떤 시인이 이렇게 말했다. 살아 있을 때는 모름지기 연약한 풀꽃 하나라도 못 견디게 사랑하고 볼 일이라고.

별 볼일 없는 존재도 사랑하면 별이 되고, 스타도 사랑을 잃으면 빛을 잃는 법이다. 뭔가 많이 가진 사람의 화려한 애인 노릇으로 생을 낭비하기보다, 사랑보다도 사람이 더 소중해지는 사랑으로 생의 신비를 체현하고 있는 이는 얼마나 단단한가.

그 단단한 젊음이 가슴으로 선택한 일 쳐 놓고 사소한 일이 없다. 못 쓰는 돌덩이를 잘라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섬세한 손이기 때문이다. 그가 운전을 하면 승객이 안전하고 청소를 하면 지구가 깨끗해지며 도우미를 하면 도움 받는 이의 영혼이 평화로워진다.

나는 희양산 봉암사 공양간에서 일을 하는 여자를 안다. 참선하는 스님을 위해 오전 3시부터 일어나서 찬을 만들고 밥상을 차려 내며 기도하는 그를 생각하면 마음은 그저 흐뭇해진다. 손은 물 마를 날 없어 두꺼비처럼 거칠어져 있는데 어느덧 친해진 그가 말한다.
“나는 이 손이 참 좋아요. 이제야 누군가를 먹여 살리는 어머니 손이 된 것 같아서….”

21세기, 모든 게 도시화된 나라에서 그렇게 순수하게, 먹여 살리는 어머니로서의 삶을 축복이라 느꼈던 건 넉넉한 태도 덕분이다. 며칠 머물러 가는 나도 나물 무치는 걸 배우고, 감잣국을 배우고, 배추전을 배운다.

소위 ‘대단한 일’을 해도 자신과 맞지 않거나 거들먹거리며 하는 자는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다. 그는 인간에게서 고립되고 일에서 소외된다. 남들의 시선에서 별 거 아닌 일이라 해도 기분 좋게 일하는 이에게서는 행복의 빛이 퍼져 간다. 일에 사랑을 쏟은 만큼 일이 그를 빛나게 한다.

남이 뭐라 얘기하나, 혹은 그 일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어떠한가에 대해 상대적으로 구애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젊음이고 관심이고 사랑이다. 자신 없는 삶일수록 남의 평가에 기댄다. 당장 돈이 되지 않아도, 일자리가 안정적이지 않아도 관심이 가고 애정이 생기는 일은 나를 섬세하게 하고 충만하게 한다.

*이주향(수원대 철학과교수)의 글 중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