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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2/27] 품을 내주는 교회
누가복음 9장 49~50절

‘사람은 서로 도우면서 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생명체로 태어났으니까 품을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 품을 산다, 품을 판다는 말도 있고, 품앗이라는 말도 있고, 엄마 품 아빠 품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 품이라는 것은 실제로 울타리 안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되고, 더 넓은 품으로 품들이 확산돼야 한다. 그 힘들이 확산될수록 좋은 세상은 온다.’(윤구병)

언젠가 교우들과 함께하는 여름신앙수련회에서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공동체는 무엇이고 그 중심은 또 어디이냐를 두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들 가운데가 중심이다, 또는 머리가 중심이다, 뭐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분이 중심은 ‘아픈 곳’이란 말을 했습니다.

몸의 어디가 아프면 모든 신경과 관심이 그쪽으로 쏠리고 그 아픈 곳을 낫게 하려고 온 에너지가 아픈 곳으로 집중되어 몸을 치료합니다. 내 몸이 그렇고 우리의 삶이 그렇습니다. 그게 정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아픈 곳을 외면하거나 거부할수록 상처는 깊어져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아픔을 향해 품을 내주는 것이 교회든 국가이든 진정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이 아픔의 땅에 당신의 품을 내주셨고, 예수님은 언제나 그 아픔의 자리에 계셨습니다. 그 아픔이 치유되고 새롭게 되도록 주님은 모든 것을 내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고 따르는 교회는 품을 열고 내주어 그 품이 곧 주님의 마음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종교의 힘은 경계를 허무는 데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다른 것과 더 많은 것을 끌어안는 절대적 힘을 부여 받았습니다. 교회에 나오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속이 좁아지거나 담을 쌓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결국엔 예수님을 통해 품고 끌어안을 수 있는 비결을 갖게 됩니다.

적어도 기독교의 신앙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입고, 그래서 부름을 입은 성도는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위하여 자신을 드리는 순명을 다하게 됩니다. 신앙으로 깊이 들어가게 되면 속이든 성이든 결국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과 그 모든 걸 주님의 이름으로 끌어안는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을 보면 주님은 율법을 넘고, 세상과는 다른 새로운 사랑을 해야 하고, 다른 차원의 용서와 이해를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인종 종교 지역 사상을 뛰어넘어 주님이 그러하셨듯이 그 품으로 세상을 구원해야 합니다.

세상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갑니다. 더 다양해지고, 더 많은 소유가 생기고, 더 많은 지식과 정보들이 생겨나는 만큼 갈등과 대립은 안타깝게도 커져만 갑니다. 교회는 생명과 삶의 소중함을 알기에 그 모든 걸 단순하고 소박하게 하는 지혜와 힘이 있습니다.

대림절과 성탄을 향하여 가는 지금, 하늘의 품을 내주신 하나님과 오셔서 이 땅의 모든 경계를 허물어 하나를 이루신 우리 주님을 봅니다. ‘우리와 함께하지 않지만 귀신을 쫓아내며 생명을 살리고 있다면 그들은 적이 아니라 우리 편이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더 크고 온전한 하나님의 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백영기 목사(청주 쌍샘자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