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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9/12] 말이 아닌 삶으로
야고보서 1장 22∼27절

서울 강서구에서 장애인학교 신설에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은 어머니 사진을 봤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손가락질하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으나 제발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 장면을 보면서 반대하는 주민을 향해 손가락질을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기독교인이 없었을까요. 분명히 주위에 교회가 있을 것이고 그 설명회에 참석한 주민 중에서도 기독교인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 사회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참담한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리고 여기 앉아 있는 우리는 과연 그들을 손가락질할 만큼 떳떳한 걸까요. 만약 그 일이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에서 일어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현재 전국에 있는 장애인학교 수는 아직 부족한 실정입니다. 그나마 있는 장애인학교 대다수도 반대에 시달리며 겨우 생겨났습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는 반대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교회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왜 이런 일이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지 고민할 책임이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기독교인들이 ‘온전한 경건’을 잊고 산다는 점에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환난 가운데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며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물들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경건은 환난 가운데 있는 이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강자가 약자를 삼키고 침탈하는 세상의 논리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경건입니다. 하지만 우리 속에는 참경건에 대한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세상 논리에 물들어 단순히 성경 지식을 많이 알고 기도를 열심히 하며 헌금을 잘 내는 일을 경건으로 오해합니다.

환난 가운데 있는 이웃을 돌보는 참경건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절대 키워선 안 되는 두 마리의 개를 버려야 합니다. 바로 ‘편견’과 ‘선입견’입니다. 이 두 가지 시선에 물들면 우리는 이웃을 혐오하는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웃을 향해 어떤 편견과 선입견도 갖지 않고 다가가는 모습을 몸소 보이셨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환난 가운데 있는 이웃을 돌보고 세상에 물들지 않고 온전한 경건을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말로만 듣고 잊는 게 아니라 경건을 몸소 실천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때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세상의 민낯에 그리스도인의 민낯을 보여줘야 합니다. 기꺼이 손해보고 나를 내어놓는 바보 같은 행동을 통해 복음의 역설이 드러납니다. 세상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옳다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시대의 민낯에 맞서 실천하는 경건을 보이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송경호 목사(경주 좋은씨앗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