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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9/07] 교회가 교회다우려면
대한민국 19대 국회에서 제출된 법안이 1만574건에 이른다. 이 중에 2785건이 처리되었고 7789건은 계류되어 있다. 그러나 제출된 법이 다 통과된다 하더라도 더 나은 세상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법으로 이 세상을 정의롭게 통치하려는 ‘법치주의’의 시도는 서양보다 동양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순자의 ‘성악설’에 영향을 받은 한비자는 예(禮)에 의한 교정을 강조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은 본래 이해타산적이며 악한 존재이기 때문에 도덕의 힘이 아닌 법적 제재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엄격한 신상필벌론에 근거한 엄벌주의와 중형주의에 의해 법치주의를 완성한 것이다. 하지만 법과 규정이 강화되어 이 세상이 정의로워졌다고 믿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사실은 그 반대가 아닐까? 그만큼 불의하기 때문에 법을 필요로 할 뿐이고, 그 법이 적용되는 순간 불의함을 드러낼 뿐이다. “법대로 합시다!” 혹은 “우리는 법을 어기지 않았습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보면 얄밉게 들린다. 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것이 교묘하게 법을 피해갔다는 쪽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위상이 땅에 떨어진 지 오래 되었다. 교회 내적으로도 염려와 자정의 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세상으로부터 교회가 받는 탈법적 비도덕적 평가들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염려의 대상이 되는 교회 대부분이 법적 소송 중에 있거나 ‘법대로’ 하자고 주장한다.

오히려 법대로 하자는 교회들에서 불의한 일들이 자행되고, 숨겨진 거짓들이 드러나고 있다. ‘법’대로 하자는 말에 ‘옳음’을 가려보자는 의도가 있지만 누가 옳은지를 가려낸다고 해도 그 공동체가 정의로워지거나 새로워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사도 바울 시대의 초대교회에도 이런 법적 소송이 많이 있었던 모양이다. 특히 고린도 교회에서 성행하고 있었던 ‘법적 소송’에 대한 사도 바울의 지적이다. “세상을 판단해야 할 교회가 세상 사람에게 재판을 받는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러느니 차라리 우리가 손해를 보거나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교회가 불의한 일을 덮거나, 은혜라는 이름으로 불법이 성행하는 곳이 되어도 된다는 용인이 아니다. 교회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법이 적용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판단과 은혜가 적용되지 않는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주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은 옳고 그름의 문제를 법으로 드러내려고 한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믿는다. 세상에서는 옳은 일을 한 사람을 위대하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유익한 일을 한 사람을 위대하다고 말한다. 괴변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런 정의가 가능하다. “우리가 옳은 일을 한다 해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다면 반드시 옳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교회가 세상에서 조롱받지 않으려면 ‘옳음’을 증명하는 곳이 아니어야 한다. ‘탈법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초법적’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세상이 법으로 이 세상을 정의롭게 만들어가려 할 때 교회는 더 이상 법이 필요 없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너무 현실성 없는 바람일지 모르지만 더 이상 교회가 세상의 법에 판단을 받지 않을 때, 교회가 세상의 법을 무력화시킬 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꿈꾼다. 우리 주님이 끝까지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가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기억하는 한 교회는 교회다울 수 있다.

김병삼목사( 만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