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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3/28] 성령 충만과 성령 충분
에베소서 5장 15∼21절

대천덕 신부는 ‘성령 충만(Fullness)’과 ‘성령 충분(Sufficient)’을 구분했습니다. 성령 충만은 헬라어에서 ‘가득 채워지다’는 의미이고 성령 충분은 ‘흠뻑 적셔지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으로 가득 채워진다는 표현은 성령이 일시적으로 채워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시적 성령 충만으로 강력한 능력과 여러 은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반면 성령 충분은 다릅니다. 성령이 일시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충분하게 채워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인격과 성품이 변화되고 성숙함이 나타납니다. 성령 충분으로 초대교회는 인격과 성품, 성숙함을 통해 문화 변혁을 이뤘습니다.

성도는 누구든지 성령 충만으로 강력한 능력을 나타내야 하지만 성령 충분으로 인격과 성품의 변화를 겪고 성숙을 향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일시적이지만, 성령 충분은 지속적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성령 충만의 능력으로 힘 있게 살아야 하지만, 성령 충분으로 지속적인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하는 겁니다.

대천덕 신부의 신학적 깊이는 놀랍습니다. 말씀의 사색과 연구를 통해 체득된 ‘산 경험’입니다. 말씀의 능력과 거룩한 성품의 변화로 얻어진 결론이기도 할 것입니다. 개혁교회는 말씀 해석을 계시 의존 사상에 기초를 둡니다. 계시 의존 사상이란 인간은 자력으로 하나님을 아는 게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을 알기 위해선 오직 계시에 의존하는 사색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근대화와 함께 양적 부흥을 추구했습니다. 양적 부흥의 이면에는 숫자적 성장으로 성령 충만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거룩을 향한 삶과 성숙을 위한 질적 성장은 간과돼 왔습니다. 일련의 부작용을 경험한 한국교회에서 이제 성장에서 성숙을 지향하는 운동이 일고 있습니다. 매우 고무적입니다.

교회마다 여름과 겨울에 청년 대학생 수련회를 열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련회에서 성령 충만을 남용하는 일이 많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선 수련회를 통해 성령 충만을 공급해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수련회가 성령 충만을 경험하는 유일한 행사가 돼선 안 됩니다. 성령 충만과 성령 충분을 균형 있게 경험하고 거룩함과 성숙을 배우는 기회가 돼야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시련의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과 성령 충분을 새롭게 분별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으로 가득 채워짐을 누리면서 성령 충분으로 흠뻑 적셔지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신앙은 극단적이어선 안 됩니다.

선교 역시 일시적 성령 충만으로 행하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성령 충분으로 행해야 합니다. 목회도 일시적 성령 충만이 아니라 지속적 성령 충분으로 해야 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는 에베소교회를 향한 사도바울의 외침은 초대교회 전역에 성령 충분의 불길을 타오르게 했습니다.

당시 가현설(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서 가졌던 육체는 진짜 육체가 아니라 육체처럼 보였다는 주장)과 천사숭배로 혼미해있던 소아시아 교회들을 일깨웠습니다. 한국교회는 성령 충분함의 함의를 깊이 되새김해야 하겠습니다.

조용성 목사(전 중동지역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