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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19] 이어령, ‘부활·한국교회·신앙’을 말하다(2)
그는 73세이던 2007년 7월, 딸 민아 목사의 투병을 계기로 세례를 받았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발걸음을 뗀 뒤 10여년이 흐른 그는 생명과 죽음에 대한 우물을 파고 있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4월17일 그를 만났다.

그는 현 시대를 ‘반생명시대’로 규정했다. 이 시대에 생명과 사랑을 말하는 것이 기독교의 역할이라 했다.
“세례를 받았지만, 당시 하용조 목사님에게 교회 안 다니고 헌금이나 주차 봉사 안하는 대신 하나님이 나를 쓰는 방법이 있을 거라고 했다. 말과 글을 통해 주님과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다. 나의 기독교관은 무엇과도 대신할 수 없는 생명에 대한 사랑이다. 그래서 ‘생명이 자본이다’라는 책을 쓴 거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반생명 시대다. 온통 생명에 반하는 짓들을 하고 있다. 인간이 이미 기계가 됐다. 의안이 진짜 사람 눈보다 더 인간적으로 보인다고 마크 트웨인이 말했던 것과 같은, 그런 시대다. 인간의 지혜로 출산마저 의료화하고 더 이상 사람들은 애를 낳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 시대 문명의 잘못이다. 생명자본주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가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이 듣지 않는다. 하지만 그야말로 생명, 하나님의 시대가 올 것이다.”

그는 예수님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라고 말한 말씀에 주목했다.
“이걸 빼고 기독교를 말할 수 있을까. 없다. 이성을 가진 자는 진리를 찾고, 구도하는 자는 길로 갈 거다. 그리고 마지막에 얻는 것이 ‘생명’이고 영생이다. 현세의 욕망을 극복했을 때 생명으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생명을 말하는 교회는 드물다. 생의 수단을 말하는 교회는 많으나, 생의 목적인 생 자체를 이야기하고 들려주는 교회는 참 드물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자꾸 말하지 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여기에서 먹고 사는 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죽지 않는 빵과 생명을 주시려 한 거다. 오병이어 다음 날 사람들을 피해 산으로 가신 분이 예수님인데 오병이어를 마치 여기에서 먹을 것을 구하면 주시는 것으로, 그걸 기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참된 교회는 없다.”

기독교인이란 어떤 존재일까.
“슬픔을 느끼는 인간이 종교를 가질 수 있다. 지금 눈물 흘리는 사람이 크리스천이 될 사람이다. 어제까지는 슬펐지만 예수 믿고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면서 생명의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해를 보고 문을 열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며 ‘저것 봐’ 하고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이 크리스천이다. 그런데 지금 몇 명이나 그런 기쁨을 느끼고 있을까.”

그는 늘 입버릇처럼 자서전은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한국에는 참회, 회개의 문화가 드물다. 한국 사람이 쓴 자서전을 보면, 다들 변명만 한다. 나는 참회할 용기도, 위장할 용기도 없어서 자서전은 안 쓸 거다.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서 만든 커다란 기념관도 싫다. 그냥 지금 내가 사는 곳, 내 살결 냄새 나는 걸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 컴퓨터 8대 있는 방, 작업실을 그대로 남겨둬서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걸로 충분하다.”

훗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기억되길 바라지도 않아”라며 환하게 웃었다.
“곧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질 걸. 뭘 바라겠어. 내 글 중에 20년이나 40년 뒤, 한두 세대 뒤의 아이들에게 읽힐 수 있는 글이 과연 몇 개나 될까. 그것만이 내가 죽고 난 뒤의 평가다. 호적 나이로 85세, 한국 나이로 86세에 문명 비평적인 글을 쓰는 사람은 없을 거다. 난 평생 우물을 판 사람이다. 무엇이 나올까 갈급함에 늘 새 우물을 파왔는데, 지금 돌아보니 덮혀 있던 옛 우물을 다시 파내는 삶도 있더라. 기독교를 믿고 나니 그런 옛 우물을 팠더라도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남는다.”

김나래 양민경 기자(국민일보종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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