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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2/02] 정용재,각막 기증한 어머니, 저 역시 따르렵니다
인천 서구 복지감리교회 부목사인 정용재(45) 목사는 지난 7월 1일 어머니의 사고 소식을 접했다. 어머니가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치여 위독하다는 비보였다. 어머니는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일주일 뒤 숨을 거뒀다.

당시 어머니는 중국 단기선교를 앞두고 있었다. 어머니가 난생처음 해외 선교를 떠나기 직전에 안타까운 사고를 당한 것이다. 지난 11월26일 복지감리교회에서 만난 정 목사는 “어머니가 단기선교를 앞두고 굉장히 설레는 모습을 보이셨다”며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정 목사는 불현듯 어머니가 생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고 한다. 사후 장기기증 관련 TV프로그램을 보던 어머니가 “나도 죽게 되면 내 몸의 일부를 누군가에게 주고 싶구나”라고 했다.

정 목사는 가족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가족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뒤 어머니의 각막이라도 누군가에게 선물하자고 제안했다.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없지 않았지만 정 목사는 가족들을 상대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설득할 때 주효했던 건 이런 논리였어요. ‘우리는 모두 기독교인이다. 어머니 역시 분명 하늘나라에서 자신의 각막 기증을 원하고 있을 거다.’ 결국 가족 모두가 제 뜻에 동의해주었습니다.”

정 목사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약자를 가장 먼저 생각하고 불의에는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정 목사가 목회자가 된 것 역시 어머니의 뜻이었다. 어머니는 3남매 중 장남은 꼭 목회자가 돼 주님의 가르침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목사는 이른바 명문대에 진학할 성적이 됐지만 어머니의 뜻에 따라 감리교신학대에 입학했고, 1994년부터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목사가 된 뒤에도 “언제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옆에 서야 한다. 그것이 목사다”라고 신신당부했다.

어머니의 각막 2개는 각막이식을 기다리던 환자 2명에게 이식됐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빛’을 선물하고 떠난 셈이다. 아울러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중국의 한 조선족 교회에 건축헌금 1000만원을 전달했다. 어머니가 중국 단기선교를 통해 방문할 예정이던 교회였다.

정 목사는 “어머니의 각막 기증을 결심할 때는 나 역시도 많이 망설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유교적인 우리 사회 분위기 때문에 사후에 부모님의 신체 일부를 기증하는 게 금기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막상 각막 기증을 결정하고 나니 큰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각막 기증을 해서인지 여전히 어머니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거 같아요. 어머니의 각막이 누군가의 눈에 이식돼 이 세상을 보고 있으니까요. 기증받은 사람들을 만나진 못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먼발치에서도 그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요. 제 어머니의 눈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니까요.”

인천=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국민일보 2014.12.2. 31면 인용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