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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3/23] 한국교회의 허명의식
최근 한 지인에게 들은 얘기다.
“목사님들과 운동을 하는데 서로를 모두 박사로 부릅디다. 처음엔 목사 신분이 드러나면 불편할까봐 일부러 그러시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에요. 진짜 모두 박사님이더군요.”
지인의 사례를 한국교회 전체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박사 목사’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짐작케 하는 경험담임은 분명하다.

최근 ‘사랑의교회’ 목회자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문제가 불거지면서 목사의 박사학위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목사가 학문으로서의 신학을 공부하고, 이 결실이 박사학위로 이어지는 것은 누가 뭐래도 권장할 만한 일이다. 영성의 보완재로서 지성은 사실 목회자들이 갖춰야 될 충분조건이기도 하다.

목사의 박사학위 새삼 주목돼

문제는 목사의 박사학위가 비본질적인 의도로 자주 활용되는 데 있다. 서울 수도권의 어지간한 교회에 담임목사로 청빙되기 위해서는 박사학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든지, 교단이나 교회 연합기관에서 한 자리 하려면 박사 정도는 돼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경우 등이다. 이러다 보니 박사학위를 취업을 앞둔 대학생의 ‘스펙’이나 TV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의 ‘코르사주’처럼 생각하는지, 목회학 박사는 기본이고 철학 신학 상담학 윤리학에 이르기까지 2∼3개 학위를 소지한 목사도 적지 않다. 2∼3주 단기 강좌를 통해 목회학 박사를 따게 해준다는 광고가 버젓이 실릴 만큼 한국교회에서 박사의 효용성은 이미 스스로 추락했는데 역설적이게도 열풍은 식지 않는다.

나는 한국교회의 박사 과잉이 단순히 ‘학위 거품’이 아니라 한국교회에 만연한 허명(虛名)의 정서에 바탕한다고 본다. 민낯이 부끄러워 화장을 하는 것처럼 속살 그대로보다는 외연 즉 형식, 치장, 포장, 덧칠을 중요시하는 의존적 심리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는 한국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투 인플레이션’ 현상에서도 잘 나타난다.

대형 성회나 집회 조직도를 보면 그게 그것 같은 자리가 한둘이 아니다. 회장만 해도 대표회장을 비롯, 대회장 상임회장 실무회장 공동회장 증경회장 여성회장 여성대표회장 운영회장 선교회장 등의 이름이 등장한다. 또 위원장의 경우도 준비위원장 행사위원장 진행위원장 찬양위원장 재정위원장 등 여럿이다. 모임을 꾸리느라 기도하고 애쓰고 돈을 보탰다는 것을 꼭 이렇게 네이밍을 통해 보상받아야 될까. 사역의 의미를 하나님이 알면 되지 왜 꼭 이 땅의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지 궁금하다.

영성을 바탕으로 근본 좇아야

박사학위도 마찬가지다. 학위가 없으면 왠지 불안하고 위축되는 것은 스스로 목사로서 설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반증이다. 허명인 줄 본인이 가장 잘 안다. 그러면서도 ‘이 목사가 따고, 김 목사도 있는데 나만 없어서야…’라는 심정에 가장 만만한 분야의 학위 대열에 합류한다. 성도들에게는 내려놓으라면서 본인은 채운다. 굳건한 영성을 바탕으로 ‘근본으로 돌아가겠다’는 각오로 목회를 하면 박사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은’ 아이템이다.

올 한 해 한국교회는 도전도 거세고 일도 많다. 무엇보다 갈수록 발호하는 이단 퇴치에 힘을 쏟아야 한다. 오는 10월 말에 열리는 WCC 총회를 위해서도 지혜를 모아야 한다. 허명을 좇는 일은 우선순위 밖이다. 가장 나중에 하거나 시간이 없으면 하지 않아도 괜찮다.

정진영(국민일보 종교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