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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7/08] 길 없는 길, 길을 열라
인생 순례, 걷는 일의 즐거움… 미래의 길을 개척하려는 용기


얼마 전 스페인 산티아고길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친구에게 물었다. 얼마나 행복하냐는 물음에 “죽을 뻔했다”고 실토하였다. 길을 걸으면서 태양은 가릴 수 있었지만 땅에서 반사되는 열기가 너무 뜨거웠다고 했다. 고생길을 감수할 산티아고 순례에 한국인들이 몰려든다니 놀랍다.

올 초여름, 동네에서 가장 일찍 모내기를 마친 이상철 형은 3년째 국토대장정에 나섰다. 제주도 해안을 한 바퀴 돈 뒤 전남 완도에서 서해 방향으로 길을 잡아 경기도 파주 임진각까지 걸었다. 69세의 나이지만 23일간 800㎞를 걸었다. 배낭에는 태극기 등을 꽂았다.

길을 걸으면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고 여쭸더니 간간이 길이 없었다고 했다. 자동차를 위한 길이었지, 사람이 다닐 만한 길은 못 되었다. 때로는 자동차전용도로에 올라타는 경우도 생겼으니 내 땅에서 순례하면서 목숨을 걸 위험을 감내해야 하였다.

베르나르 올리비에라는 프랑스 언론인이 걸은 길에 비하면 한반도 반쪽의 국토순례는 너무 비좁게 느껴진다. 그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무려 1만2000㎞를 걸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4년을 반복하며 꼭 1099일이 걸렸다. 동방견문록의 기억을 더듬어 현대판 실크로드를 기록한 ‘나는 걷는다’(3권)를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웠다.

말이 비단길이지 위협이 곳곳에 도사리는 뱀과 모래의 길이었다. 걷기를 마친 그는 ‘쇠이유(Seuil)’를 조직하였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이른바 ‘문제 청소년’들과 함께 걷는 모임인데, 아무리 비뚤어진 마음도 1000㎞쯤 함께 걸으면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했다. 종교인의 순례든, 그냥 걷기든 사람들은 길 위에서 삶을 고치는 중이다.

걷기 열심과 함께 길 내기 열풍이 불었다. 웬만한 지방자치단체마다 산책길을 만들고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 상품화하기에 이르렀다. 제주도 올레길을 시작으로 이를 벤치마킹한 도보길이 전국에 600여개, 1만8000㎞에 이른다고 한다. 산티아고길의 한국판인 셈이다. 물론 삼남길, 영남길처럼 길게 호흡하며 걸어야 할 역사 순례도 있고, 동해안 해파랑길과 DMZ 평화누리길처럼 평화 순례도 가능하다.

지난 6월17일, 대통령이 주재한 ‘문화관광산업 경쟁력 강화 회의’에서 문화체육관광부는 4500㎞ 코리아 둘레길을 제안하여 국토순례길에 대한 논의에 불을 지폈다. 전국 여행길을 네트워크화하여 ‘대한민국 대표 콘텐츠’를 만든다는 큰 포부는 다소 설익게 들렸다. 근거도 산출도 쉽지 않은 기대효과를 부풀리면서 당장 ‘박근혜정부판 4대강 사업’이란 비판이 쏟아졌고, 이를 2018년까지 완성하겠다고 서두르자 여론은 더 나빠졌다.

사실 한반도 절반에 갇힌 길은 이미 식상한 지 오래다. 정부 차원의 비전이라면 상상력이 빈곤해진 코리아 트레일을 넘어 한반도를 아우르는 길로, 유라시아로 펼쳐진 대륙으로 한 걸음, 열 걸음 더 나아가야 할 것 아닌가. 마치 목적지를 잃은 사람처럼 맴돌고 도는 환상방황식 꿈꾸기로는 희망의 길을 열 수 없는 법이다.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앨빈 토플러는 2001년 6월, ‘위기를 넘어서 21세기 한국의 비전’을 123쪽에 걸쳐 제시하였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혜안의 길이었다.

산티아고는 성 야고보를 의미한다. 야고보의 순교(사도행전 12:2)는 순례길 이야기와 함께 풍성해져 고난의 길을 치유의 길로 만들었고, 만 리 길도 멀다않고 찾아가게 하였다. 야고보는 스페인 국민이 사랑하는 수호성인으로 기림받는다. 순례자는 길 아닌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다.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길 없는 곳에 길을 내려는 진실한 용기이다.

송병구 목사(색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