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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19] 모세의 죽음
루카 시뇨렐리, 모세의 죽음(부분), 350×572cm, 프레스코, 1482년, 바티칸 시스티나성당
르네상스 미술가 시뇨렐리가 모세의 일생을 한 장에 그렸다.
왼쪽 맨 위에 그토록 염원하던 가나안 땅을 코앞에 두고도 결국 들어가지 못하고 숨을 거둔 모세의 장례식 장면이 그려져 있다.
민족의 지도자, 이집트의 노예를 자유케 한 해방자, 홍해를 가른 능력자, 숱한 위험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인도한 탁월한 영도자 모세, 그가 죽었다. 모세의 머리 위 인물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시신을 바라보면서 얼굴을 감싸고 있다. 어떤 이는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반대편 하늘을 바라보며, 또 다른 이는 눈물을 훔치고, 무릎을 꿇고 사자를 애도하며 배웅하는 이도 있다. 모두가 비통하며 슬픔에 잠겨 있다. 누워있는 모세의 시신은 대체로 그리스도의 시신과 같은 형태를 보여줌으로써 옛 계약의 당사자 모세와 새 계약의 당사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은연중에 일치시키고 있다. 모세는 죽었음에도 아직 머리에는 빛나는 뿔(빛)이 살아있지만,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끝내 가나안에 이르지 못한 아쉬움의 표현일까, 평생 약속만 믿고 살았던 모세에게 가나안을 허락하지 않은 하나님에 대한 아쉬움의 발로일까!
신앙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 중의 하나는 진심으로 믿음으로 살았고 또 약속을 믿었고 그 성취를 눈앞에 두었으나 결국 마지막 목표지점에 도달하지 못할 때이다. 기왕이면 여기까지 왔는데 마지막 은총의 햇빛을 비춰주셔서 결실까지 하고 죽는다면 여한이 없을 것이었다.
신명기는 모세에 대하여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 “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신 34:10) 사실 이 정도면 가나안 땅에 발이라도 밟아보게 하고 숨을 거두게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정도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주 냉철하게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가나안을 보여주기만 하고 너는 들어가지 못하리라 선언하신다. 그리고 모세는 진한 아쉬움 속에서 숨을 거뒀고 가나안 땅이 아닌 가나안이 보이는 광야 어느 곳에서 묻혔다. 제 3 자가 보아도 아쉽다. 그리고 하나님이 왜 그렇게까지 하셨는지 솔직히 잘 이해가 안 간다.
시뇨렐리의 그림 왼편 아래에는 새로운 역사의 한 장면이 등장한다. 모세가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지도자의 책임과 권한을 이양하고 있다. 평생 그에게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하는 지팡이를 여호수아에게 건네주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미리 준비해야 한다. 가나안에 들어갈 새 세대의 새 역사는 광야를 떠나 가나안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광야의 과정에서부터 이미 새로운 지도력이 필요한 것이다. 모세 개인의 입장에서는 너무 아쉽고 하나님이 야속하게도 보이지만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에서 가나안에 정착시키고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야 하는 절대적 카이로스의 순간에는 개인이 아니라 전체를 보아야 하며, 하나님은 모세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보고 모세 시대의 종언과 여호수아 시대의 출발을 선언하셨다. 결국 이것이 축복이었다. 믿음은 개인의 아쉬움을 넘어 공동체의 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페이스북 이훈삼목사(성남 주민교회)홈페이지에서 인용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