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녕자   gido@gidoschool.com
  [2019/03/06] 낯선 주님인가, 친밀한 주님인가
사르르 눈 녹으니 봄꽃이 하나씩 피어납니다. 미세먼지로 공기는 탁하지만, 어김없이 봄이 왔습니다. 우리의 영혼에도 이처럼 새롭게 소생하는 역사가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인생은 빨리 달려가는 것보다 나아가는 방향이 올바른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알프스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13일간 방황하다 구출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매일 12시간씩 걸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길을 잃은 장소를 중심으로 불과 6㎞ 안에서 왔다 갔다 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눈을 가리면 똑바로 걷지 못합니다. 20m를 걸으면 약 4m 정도 간격이 생기며 100m를 가면 결국 원을 그리면서 돌게 됩니다. 이 현상을 ‘윤형방황(輸形彷徨)’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눈을 가리고 똑바로 걸으려면 약 30보 걸어간 후 잠깐 멈췄다가 새 출발의 기분으로 또 30보를 걸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로 계속 어디를 향해 가는지 방향을 점검하며 살아야 합니다. 제가 항상 점검하는 것은 주님과 얼마나 더 친밀해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미술에 재능을 가진 소년이 1년간 비둘기의 발만 반복해서 그렸습니다. 거리의 비둘기를 관찰하며 엄청난 양의 비둘기 발 그림을 그리고 휴지통에 버리기를 반복했습니다.

이를 의아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왜 다양한 사물을 그리지 않느냐고 묻자 소년은 천진난만하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비둘기 발만 계속 그리라고 하셨어요.” 1년 후 그 소년은 비둘기 발의 모양이 50가지가 넘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훗날 입체파의 대가가 된 피카소입니다. 일찍이 아들의 천재성을 발견한 그의 아버지가 피카소에게 관찰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려고 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기독교인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아는 것이라고 하셨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오는 생명은 예수님에 대해 아는 지식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아는 관계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아는 것은 그와 얼마 동안 친밀히 동행했는지에 따라 그 깊이가 달라집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8년 주님과 동행 일기를 써오면서 ‘나는 무엇이 변했나’ 돌아봤습니다. 저는 이전에도 성실했고 모범적인 목회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리새적인 성실이었습니다.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평가에 연연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다는 것인가’ 생각해 보니 ‘정말 주님을 바라보게 됐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 저의 모습은 부끄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거짓되고 교만하고 유치하고 욕심 많고 음란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게 된 지금 제게 은밀한 시간은 은밀히 은혜받는 시간이 됐습니다.

전에는 사람의 칭찬을 받아도 갈증이 점점 더해 갔습니다. 설교에 은혜받았다는 교인들의 말은 한편 기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더 큰 스트레스를 주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면서 사람의 칭찬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주님의 칭찬에 만족하게 됐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의 칭찬을 들으러 열심히 사역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뻐서 감사해서 주님의 마음이 강권하시기에 사역할 뿐입니다.

전에는 제 마음 깊은 곳에 사람들의 비난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싫어하면 불의한 일에도 할 말을 못 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성도가 받을 영광을 보게 됐습니다. 그것은 제게 참으로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고난이 복임을 알게 됐고 돌짝밭 사명을 외면하지 않게 해줬습니다.

우리가 가진 최대의 문제는 주님 앞에 설 때, 낯선 주님으로 만나느냐 친밀한 주님으로 만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를 너무 늦게 깨달으면 큰일입니다. ‘예수님을 얼마나 오래 믿었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친밀히 동행한 지 얼마나 됐느냐’ 하는 것입니다. 겨울이 지나고 다시 찾아온 봄, 주님과 함께 새로운 길을 떠나는 기분입니다.

유기성목사(선한목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