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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2/14] 김수길, 찬양의 기적
어머니를 따라 초등학교 2학년 때 자연스럽게 교회에 나갔으니 모태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고등부 학생회장뿐 아니라 고3 때 성가대 지휘를 맡았고 서울음대 기독학생회장직을 수행했으니 그런 대로 교회 생활과 신앙 경력은 화려한 편이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또 그런 하나님을 내가 정말 만난 적이 있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대학 졸업 후 독일 하이델베르크 만하임 음악대학원으로 유학, 뼈를 깎는 고학으로 4년 만에 졸업한 뒤 귀국, 국립 군산대 교수가 됐다. 음악을 하면서도 항상 머릿속에는 '민족과 역사, 신앙이라는 주제로 창작 오페라를 만들 수 없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1994년 사단법인 고려오페라단을 창단했고 오페라 '안중근' '에스더' '유관순' 등 주옥 같은 작품을 연출했다.

특히 오페라 '안중근'은 1995년 광복 50주년이라는 시의성과 목적성에 작품성까지 뛰어나 전국 10개 도시를 순회하며 33회 연속 공연이라는 한국 오페라 역사상 유례 없는 대기록을 남겼다. 6만여 관중이 민족애와 조국애에 대한 뜨거운 감동으로 함께 울어버린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미주 공연과 남북 공동 제작 공연을 기획하고 있던 2004년 9월21일. 대장암 말기라는 진단은 한 마디로 청천병력이었다. 3∼6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받고 수술대에 누웠을 때는 이미 암세포가 간과 복막으로 전이된 상태였다. 간에 전이된 암덩어리는 대정맥이 지나는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어서 대장과 복막으로 퍼진 암세포들만 제거하고 수술을 마쳐야 했다. 수술 후 항암치료를 6회나 받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어차피 죽는다면 병원에서 비참하게 죽기는 정말 싫었다. 결단을 해야 했다. 그때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30년 넘게 교육자로 살았으니 교단에서, 예술가답게 무대에서, 간증 찬양을 하다가 교회 강단에서 쓰러지게 하옵소서."

어느 날 말씀을 찾아 읽던 중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는 말씀이 위로가 됐고 생명줄이 됐다.

영이 살면 육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깨달음이 왔다. 사실 현대의학의 위력을 저버리고 독자적인 판단으로 병원문을 나선다는 것은 무척 무섭고 무모한 결단이었다. 그러나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긴다면 그분께서 주장하실 것이란 확신이 생겼다.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검사는 물론 한 번도 병원을 찾은 적이 없다. 주위 의사들까지 의학적으로는 도저히 이해도 설명도 할 수 없는 기적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나는 강의실과 교회 강단에서 아무일 없었다는 듯 살아왔다.

강렬했던 무대 조명과 황홀했던 박수 갈채를 뒤로하고 이제는 주님의 나귀가 돼 용인의 샘물호스피스선교원의 고정 찬양 간증, 설교자로, 전국 교회와 연합단체 및 방송국 초청 강사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에는 우리 대학 교수신우회와 모교인 성남고등학교 총동창신우회를 이끌 수 있도록 힘을 얹어주셨다.

이렇듯 나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대로 빛과 어둠, 환란과 평안에 순종하고 기뻐하면서 조건 없는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알아감으로써 크리스천이 돼가고 있다.

이제 암은 더 이상 내게 장애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일 뿐이다. 고난을 선하고 유익한 목적으로 쓰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축복이란 것을 깨닫는다. 하나님은 머지않아 다시 오페라 무대로 보내주실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목숨으로 살기보다는 생명으로 살기를 간구하며 오늘의 소중함과 건재함에 감사한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시 118:17)

국민일보 2007.6.29.37면 인용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