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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6/30] 최기영, '편견' 대신 신견(神見)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자기 나이만큼 키워온 개(犬) 두 마리가 있다. 개의 이름은 ‘편견’과 ‘선입견’이다. 그렇게 울타리 쳐진 우리의 생각은 사각지대에 빠져 사각사각 죽어가고 관습과 타성에 젖은 우리 얼굴은 사색이 되고, 상식의 덫에 걸린 인생은 식상해진다.’

‘지식산부인과 의사’로 불리는 유영만(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의 저서 ‘생각지도 못한 생각지도’(위너스북)에 나오는 구절이다. 생을 살아온 시간 동안 자기 시선에서 바라 본 사람 사물 현상에 대한 생각이 고착화됨을 꼬집는다. 세상은 지금도 생각의 차이, 다름에 대한 인식 등으로 인해 상처를 낳고 몸살을 앓고 있다.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시각도 그 중 하나다.

울타리 쳐진 시각 때문에 사람들의 생각이 사각지대에 빠져 죽어갈 때 장애인들은 사각지대에 갇힌 채 “함께 살아가야 할 세상”을 외친다. 고독한 외침이다. 관습과 타성에 젖은 사람들의 얼굴이 사색이 될 때 장애인들은 심장이 타들어가고 가슴이 미어진다. 편견에 빠진 사람들의 인생이 식상해 질 때 장애인 가족들의 인생은 식상함을 운운할 겨를 없이 고달파진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외치며 제법 살만한 나라임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현 주소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저서 ‘노붐 오르가눔(Novum Oruganum)’에서 4가지 우상을 통해 편견과 선입견을 조명한다.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입장에 갇혀 사고의 폭을 좁게 만드는 ‘종족의 우상’, 자신의 경험 교육 습관 등에 매몰돼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마는 ‘동굴의 우상’, 직접적인 관찰이나 경험 없이 교제나 대화에만 의존해 오류를 발생시키는 ‘시장(市場)의 우상’, 잘못된 논증이나 유명인의 말을 맹종하는 데서 온 ‘극장(학설)의 우상’이 그것이다.

멀리 내다보지 않더라도 우리네 일상에서 장애인을 대할 때 어렵지 않게 4가지 우상을 마주한다. 집값 하락을 걱정하며 장애인특수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님비현상이 여전하고, ‘예비 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비장애인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확신에 빠져 장애인이 겪는 불편함을 외면하기도 한다. 심지어 ‘장애인=금치산자’로 선을 그은 채 장애인의 의견과 주장을 비합리적·비논리적인 것으로 폄훼하기도 한다.

혹자는 “편견을 잡는 개(犬)가 있다”고 말한다. 그 개는 ‘백문이불여일견(百聞不如一犬)’이다. 직접 보고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말라는 조언을 재치 있게 표현한 말이다. 장애인 성도들의 교회 접근성을 취재하기 위해 직접 휠체어에 몸을 실은 적이 있다. 태어나 처음 앉아 본 휠체어는 평소 앉던 의자에 바퀴만 단 게 아니었다. 핸드림(hand rim)을 돌리며 움직인 지 몇 초 만에 작은 배수구에 앞바퀴가 빠져 고꾸라질 뻔했다. 걸어 다닐 때 그토록 아름다워 보였던 붉은 벽돌길은 ‘지옥구덩이’와 다름없었다.

성경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약 2:1)고 기록한다. 나아가서는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약 2:9)고 경고한다. 범법자가 되지 않을 방법은 긍휼함을 갖는 것이다. 긍휼함의 기본 바탕은 사랑이다. 사랑의 출발점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편견 대신 신견(神見)을 가질 때 비로소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차이 없는 사이가 될 수 있다.

최기영 기자(국민일보종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