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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02] 한미라, 고통, 교만의 해독제
롬 5장 3∼4절, 벧전 2장 20∼21절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고통과 환난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에 어떻게 응답하시고 있는가. 그리스도인들은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이라면 한 번쯤 스스로 질문해보는 난해한 질문 중 하나일 것이다.

고통 또는 고난은 영과 육의 괴로움과 어려움을 뜻한다. 크게 세 가지의 관점에서 인간의 고통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우리의 죄로 인한 징벌로 고난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죄를 짓지 않으면 고난은 일시적으로 멈출 것이다.

둘째, 고통은 더 큰 고난을 예방하기 위한 경고의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주변 나라의 압제를 받을 때마다 하나님께 신원해 더 큰 고난을 예방할 수 있었다. 셋째,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같이 인류가 지은 죄를 대속하기 위해 고난을 받으신 사건을 의미한다.

예수의 고난이 값비싼 은총이 되기 위해 믿는 자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일, 즉 참된 제자도를 실천하며 살아야 할 책임적 존재가 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져야 할 멍에는 쉽고 가볍다. 다가올 고난에 대해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달려가야 할 구원의 경주로를 뚫어 놓으셨고, 그 여정의 끝에는 보장된 축복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을 받을 엘피스, 즉 희망을 가지고 이 풍진 세상을 용기 있게 대면하며 살면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 3절과 4절에서 ‘우리가 받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희망을 이룬다’고 말했다. 기독교인의 고난을 구원, 종말과 관련해 이해하는 지평을 열어 놓았다. 영성 작가인 필립 얀시 역시 고통은 분명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는 선물’이라고 말한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인 빅터 프랭클에게 있어 고통은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었다. 1997년 사망한 프랭클은 유대인 신경정신과 의사로서 2차세계대전 중 4개의 수용소를 전전하면서도 살아남았다. 언제 가스실로 끌려가게 될지 모르는 공포와 절망 속에서도 누군가 전해준 작은 종이쪽지에 쓰여진 말씀(신 6:5)을 의지하며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적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하루 한 컵의 물로 세수와 면도를 했고 몸 씻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까닭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고 끝까지 살아남아서 1945년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극한의 공포 속에서도 삶의 의미는 만들어지고 있었다.

나치의 가스실로 가는 길에서 어린 딸이 유대인 아빠에게 물었다. “우리가 이렇게 억울하게 죽어 가는데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신가요?” 아빠가 말했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 우리와 함께 계신단다.” 정말로, 고통이란 쉽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고통은 예수의 흔적이요, 우리의 훈장이며, 우리 몸과 영혼에 새겨진 예수의 못 자국이다. 그러므로 고통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교만의 해독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교만을 제일 싫어하신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우리의 영과 육에 배어있는 교만을 해독하지 않으면 현재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시는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한미라 목사(호서대 연합신학전문대학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