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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11] 김덕규, 영생 실습
바이블 생명학-영생 실습

인간은 그의 생명이 수태된 순간부터 죽음마저 잉태하게 된다. 이러한 역설로 인하여 탄생은 곧 죽음을 향한 출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성경은 사람의 수명이 백이십년임을 가르쳐주고 있지만 대부분 백세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한다. 노화에 의한 자연사를 맞이하는 사람은 그래도 행복한 편이다. 질병이나 재해로 인하여 불행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 너무나 많은 것 같다.

인간은 이러한 자신의 유한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그래서 의학자들은 인공장기를 만들어 병든 장기를 대체해 보기도 하고 동물이나 다른 사람의 건강한 장기를 이식하여 생명을 유지하려고 한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여 복제된 인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의학자들을 유혹하기도 하는 것이다.

향후 진보된 생명과학 기술이 사람으로 하여금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게 해줄 수 있을까. 성경은 이러한 방법이 결코 영생을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을 행간을 통하여 말하고 있다. 아니 오직 하나님의 방법만이 사람으로 하여금 영생할 수 있게 한다는 메시지를 설파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영생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영생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잘못을 지적하고 이들을 신랄하게 꾸짖기까지 하셨다. 사람들이 영생을 얻기 위해 성경을 읽지만 정작 자신에게 오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씀하셨다. 이 꾸짖음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영생의 열쇠를 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생을 얻고자 하는 자는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그리스도께로 나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것이리라. 또한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는 능력과 권능을 가지신 분이라고 믿는 것이리라.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과 하나 되신 분임을 믿는 것이리라.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이신 그 하나님은 누구신가. 그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고 그 독생자를 믿는 자에게는 영생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과 그 아들이 믿는 자들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그 영생이란 무엇일까? 영어 성경에는 영생이 ‘eternal life’로 표기되어 있다. 이를 직역하면 영원한 생명 혹은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이란 결국 하루하루의 생명이 연장된 것이라는 것과 영원한 삶이란 가지고 있는 생명이 영원한 것이기에 가능하게 되는 것이자 그 결과로 따라 오는 것이다.

영생을 영원한 생명이라고 번역한다면 영원한 생명은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그 생명, 새 생명이라고 설명하면 될 것이다. 영생을 영원한 삶이라고 번역한다면 영원한 삶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영원한 삶을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설명하면 될까.

악한 자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을 상상해 보자. 악한 자와 함께 영원히 사는 그 곳이 바로 지옥 아닌가. 그곳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영생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영원한 죽음인 것이다. 따라서 영원한 삶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설명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영생은 주님께서 주신 영원한 생명 혹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하나님과 그 아들을 믿고 있는가. 그렇다면 나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고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어야 마땅하다. 내 삶이 그분이 주신 그 생명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나와 동행하시고 동거하시므로 말미암아, 영원한 삶의 연속으로 이어져야만 마땅하다.

만약 이것이 진실이고 실제로 경험되어지는 것이라면 영생은 천국에서가 아니라 이 땅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천국이 하나님과 영생을 누리는 곳이라면 이 땅은 영생을 알아가는 곳일 것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김덕규 교수(동아대 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