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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0/17] 김봉준, 영적인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
본문 : 시편 2장 1~12절

현대사회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문명이 발전해 있습니다. 과학과 지식, 음식문화, 의생활, 주거환경 등이 발전해 있는데도 왜 사람들은 불행해할까요? 왜 자살하는 사람이 늘어가며, 우울증 환자가 급증할까요?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수많은 학교와 종교기관에서는 윤리와 행복에 대해 강의하건만 사람들은 왜 행복하게 살지 못할까요? 왜 이단이나 사이비에 넘어가며 영적인 혼란에 빠질까요?

우리는 영적 세계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내게 일어나는 현상이 육신의 문제인 것 같아도 배후에는 영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인 문제는 믿음의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첫째, 세상에 종교는 많으나 복음은 하나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종교일 뿐 복음은 아닙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세상종교는 우상숭배와 연결되며 배후엔 사탄이 있습니다. 그들은 거짓으로 사람을 미혹하여 예수님을 시험했던 3대 시험 중 하나에 걸리게 합니다.

돌로 떡을 만들라는 시험은 편법을 쓰더라도 돈을 벌라는 시험입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라는 시험은 이생의 자랑, 즉 자기를 높이는 행위를 나타내는 시험입니다. 내게 엎드려 경배하라는 시험은 사탄 숭배를 위한 그들의 최후 목적입니다. 이처럼 흑암의 세력에 굴복하면 다 빼앗깁니다. 자신도 모르게 복음에서 이탈됩니다. 성도는 영적으로 바로 서야 합니다. 영혼의 문제가 우선입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되어야 합니다.

둘째, 복음은 있으나 생명력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생명의 불이 꺼져간다는 말입니다. 병원에 간다고 다 고침을 받습니까? 십자가가 있다고 다 성령의 불이 타오릅니까? 숲속의 나무에 생명이 없다면 살았다 하나 죽은 나무입니다. 예배와 설교, 조직이 그럴 듯해도 성령의 불이 꺼지면 생명이 없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기도와 성경 그리고 성령이 중요합니다.

용광로도 불이 타올라야 쇳물을 낼 수 있습니다. 차가운 냉장고에서 병아리가 부화될 수는 없습니다. 차고 냉랭한 교회에서 영혼의 변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너무 귀한 성령의 전이요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가 불타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으로 뜨거워야 합니다.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은 생명 주시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셋째, 들어야 할 사람이 듣지 못합니다. 오늘날 꼭 필요한 사람들이 복음을 모릅니다. 반드시 들어야 할 사람들이 듣지 않고 있습니다. 생명이 필요한 자에게 주님은 감옥이든 광야든 찾아가십니다. 예수님은 풍랑이는 바다도 찾아가시고, 벳새다 광야의 굶주린 오천명에게도 찾아가시고, 가나의 혼인집처럼 낭패당한 가정에도 찾아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되 적당히 사랑해서는 안 되고 생명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신 그 말씀을 가슴에 담아야 합니다.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입니까? 인생이 아무리 좋아보여도 예수님이 빠지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김봉준 목사(구로순복음교회)